영국의 역사가 칼라일은 "세계사는 위인의 역사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역사에 있어서 주체는 영웅이고 곧, 영웅이 무엇을 했는가 하는 것이 역사라는 말이다. 이것이 바로 '영웅사관'이다. 영웅사관은 전쟁 영웅, 탁월한 정치 지도자, 뛰어난 문학가와 예술인, 그리고 천재적인 과학자들 소위 '뛰어난 사람들'이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전제 아래 이들의 개인사를 역사의 핵심에 놓고 있다.
과연 인간의 역사는 '뛰어난 사람들' 즉 영웅이 만들어 가는 것일까? 나는 이 문제에 단호히 '아니오'라는 대답을 하겠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단호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영웅사관에 인정을 하는 것 같다. '당신은 자신이 역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 자신있게 '그렇다'고 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것은 '나'외에 다른 어떤 사람에 의해, 통치 영웅과 같이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역사가 만들어진다는 생각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뛰어난 사람들이 역사에서 하는 역할은 실로 중요하다. 대중이 좌절에 빠졌을 때 참된 정치 지도자의 방향제시는 어둠 속의 한줄기 빛이고, 과학자들의 출중한 연구 성과는 노동자들의 힘든 노동을 줄이고 새로운 사회를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
이 때문에 우리는 뛰어난 모든 사람들을 영웅으로 숭배하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안되지만 역사 발전을 이끄는 사람들을 무시해서도 안될 것이다. 영웅숭배는 배격되어야 하지만 참된 영웅은 그 역할에 어울리는 존경을 받아 마땅하다. 이 말을 듣고 영웅사관을 인정하는 말이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질 수도 있다. 하지만 영웅사관의 문제점은 영웅을 존경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뛰어난 사람들이 마음먹은 대로 역사를 만들어 간다고 생각한다는데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뛰어난 개인이 역사에서 부각 될 수밖에 없는 역사적 상황과 역사적 발전 과정을 무시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수에 의해서 형성된 사회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는 개인이 오히려 사회를 자기 멋대로 창조한다고 주장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민중이 기억해주지 않는 다면 그 사람은 영웅으로 남아있을 수 있을까? 호라티우스가 애꾸눈의 영웅이었지만 지금은 그저 영시로써만 존재하고 이영복은 한때 반공 영웅이었지만 지금은 이름을 아는 사람도 드문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영웅이라는 존재가 하나의 사회적 구심점 중 하나라는 것을 간과해선 안된다. 한명의 영웅이 탄생하기 위해서는 물론 개인의 뛰어난 능력이 필요하겠지만 그것보다는 사회적 상황 그리고 소위 '시대정신'이라는 다수의 혹은 사회 집단의 도덕과 명분이 더 큰 영향을 준다. 어차피 개인은 사회에 의해서 규정받는 존재이고 어떤 한 개인이 사회를 마음대로 규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영웅사관은 개인과 사회의 관계를 완전히 깨어버리고 단일 개인을 고립화시킨다. 또한 사회를 한 개인을 통해서 시대와 사회를 재구성하는 위험을 낳게 되는 것이다.
앞에서 제시했던 한가지 질문을 상기시켜보자. '당신은 자신이 역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이다. 이제 이 질문에 대한 올바른 답을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고 우리 모두는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 즉 우리의 삶은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뛰어난 능력을 가진 사람만이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의식을 버리고, 다시 한번 내가 역사의 주체라는 의식을 가질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세계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계 닭요리-부귀닭, 거지닭, 진흙닭 (0) | 2020.07.20 |
---|---|
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거리 모습 (0) | 2020.07.20 |
조지 워싱턴의 퇴임사 (0) | 2020.07.20 |
조선 후기-구한말 정치 변동과 군사 기술 변화 (0) | 2020.07.20 |
독립 운동 선전 잡지를 통해 보는 국제 정세 인식 (0) | 2020.07.20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