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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2

1차대전 당시 영국군 사형자 통계 1차대전 당시에 영국군을 포함한 각 참전국들은 군율을 적용하는데 엄격하였는데 이는 이러한 군율위반이 군의 사기와 더 나아가서는 국가 전체의 사기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하였습니다. 영국군만 하더라도 1914년 8월부터 1920년 4월까지의 기간 동안 3000명이 넘는 인원을 군사재판에 넘겼으며 이들 중 90%의 인원이 노동형이나 몇몇은 사형을 언도 받았습니다. 물론 노동형도 가혹하긴 했지만 역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군법에 따른 사형 집행이겠죠. 1914.08~1920.04까지 영국군 사형 집행 죄목별 건수 폭동-2 비겁-18 탈영 및 도주-266 살인-37 파업-6 항명-5 근무중수면-2 근무지이탈-7 화기유기-2 영국군에의해 사형이 언도 된 항목 중에 가장 눈에 띄게 많은 것이 탈영 및 .. 2020. 7. 20.
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거리 모습 1차대전 발발 직후 각국의 민중들의 모습은 마치 열광과 기고함에 혼재된 도가니였다. 모든 사람들아 거리와 광장에 모여 마치 신탁을 받는 듯한 모습으로 선전포고에 열광하는 모습들은 도저히 근대적인 인간의 합리적인 모습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었다. 당시 어느 국가의 국민도 이런 광신적인 열광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으며 이것은 19C 근대 사회의 형성이라는 이름 저편에 생긴 각국의 국민들에게 암묵적으로 인정되어진 공통된 인식인 동시에 이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우리는 이를 '전쟁낭만주의'라고 부른다. 흔히 이런 전쟁 낭만주의를 장시간 평화 시기에 따른 안보적 인식 해이 혹은 전쟁에 대해 뭘 모르는 인식 부족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든 주요 참전국의 국민들이 심지어는 파리에서 자신의 동원 소.. 2020.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