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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1차대전 당시 영국군 사형자 통계

by 바스통 2020.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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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대전 당시에 영국군을 포함한 각 참전국들은 군율을 적용하는데 엄격하였는데 이는 이러한 군율위반이 군의 사기와 더 나아가서는 국가 전체의 사기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생각에서 기인하였습니다. 영국군만 하더라도 1914년 8월부터 1920년 4월까지의 기간 동안 3000명이 넘는 인원을 군사재판에 넘겼으며 이들 중 90%의 인원이 노동형이나 몇몇은 사형을 언도 받았습니다. 물론 노동형도 가혹하긴 했지만 역시 가장 논란이 되는 것은 군법에 따른 사형 집행이겠죠. 

1914.08~1920.04까지
영국군 사형 집행 죄목별 건수

폭동-2
비겁-18
탈영 및 도주-266
살인-37
파업-6
항명-5
근무중수면-2
근무지이탈-7
화기유기-2

영국군에의해 사형이 언도 된 항목 중에 가장 눈에 띄게 많은 것이 탈영 및 도주(Desertion)인데 이는 초기 전역에서는 몽스 전투 이후에 연속적인 후퇴 과정에서 그리고 참호전이 시작 된 이후에는 참호 투입 과정에서 병력 이탈이 자주 발생 되었기 때문입니다. 

동기간 영국군 
사형집행 전역별 횟수

프랑스 벨기에 전역-322
동 아프리카-5
메소포타미아-4
콘스탄티노플-4
갈리폴리-3
살로나카-3
이집트-2
이탈리아-1
팔레스타인-1
세르비아-1

총합-346

하지만 아시다 싶이 이는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애매한 경향이 있습니다. 1차대전기 영국군 최초 장교 사형수였던 Eric Poole처럼(원래는 몇몇 영국군 사형수들의 사례를 쓰려고 했지만 이놈의 데이터 때문에 다음으로 미루도록 하죠) 쉘쇼크처럼 정신적 외상에 따른 전투 불능까지도 탈영에 범위로 보았기 때문이죠. 이건 비겁(Cowardice)항목과도 궤를 같이 합니다. 지금 시각에서 보면 모호한 법 집행이죠. 이는 잘 아시겠지만 지금까지도 논란거리 입니다. 결과적으론 영국군은 2006년 11월에 이들 사형수에 대한 사면을 하였습니다. 

물론 영국군 이외에 각국 참전국들도 사형을 집행했습니다. 나라별로 보면 프랑스 같은 경우는 동기간에 600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하였고 독일군의 경우는 58명에 대해 집행하였습니다. 벨기에의 경우는 13명을 사형했고 캐나다와 뉴질랜드는 각각 23명과 5명에 대해 사형을 집행하였습니다. 미국과 호주는 한명도 없었지만요. 영국과 영연방국가들은 2006년을 기점으로 이들에 대한 사면령을 내리긴 하였습니다. 하지만 프랑스의 경우는 아직까지도 이들에 대한 언급은 군부나 프랑스 사회에서 금기인 것으로 압니다. 1997년에 당시 프랑스 대통령이 이들 사형자들이 묻힌 묘지에 헌화했다가 논란을 불러일으켰죠.(피곤해서 이름이 기억이 안 나는데 대전 당시 프랑스 서부 격전지였습니다만 기억이 안 나네요)이후에 프랑스 대통령이나 군부가 이들에 대한 특별한 사면이나 법적 절차를 밟았다는 얘기는 못 들었습니다. 

영국의 경우는 이를 Shot at Dawn이라 하여 스테포드셔의 국립 기념 식물원 내에 추모상과 공간을 2001년 6월에 세웠습니다. 참고로 추모상은 실제 사형 당했던 한 영국군 병사를기반으로(근데 많이 불쌍한 애입니다. 모델이 된 사람 이름은 Herbert Burden인데 한전 찾아보시길) 만들어졌습니다. 




출처:Britain at war
BBC World 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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