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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사

대한민국 최초의 예비군 호국군

by 바스통 2020. 7.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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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최초의 예비군 호국군

 

 대한민국 최초의 예비군인 호국군군은 1948년 당시에 미군 철수가 확실시 되자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 1948년 11월 30일 부터 창설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러한 예비군제가 설치된 배경에는 일단 한국군의 입장에서 당시 좌익 준동과 반란 사건의 영향으로 군의 양적 물적인 수를 늘리는데 주력하려는 취지였는데 미군 철수가 확정되고 단기적으로 철수를 시작했을 당시 한국군은 지원병제를 채택하고 있었고 국군의 병력을 10만으로  제한하는 규정과 예산등의 사정으로 정규군을 확충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웠기 떄문이었습니다. 결론은 일종의 꼼수였다고 봐야죠. 따라서 한국군은 이에 대한 보강책으로 1948년 11월30일 법률9호로 공포된 국군 조직법 12조 '육군은 정규군과 호국군으로 조직한다'는 법률에 따라 예비군 제도로써의 호국군을 창설합니다.  

  

 호국군의 성격과 세부 규정은 1949년 1월 20일 대통령 긴급명령으로 대통령령 52호 [병력임시조치령]에 명시되었는데 기본적으로 호국군의 성격을 정규군의 전투력 증강으로 명시했으며 편성으로는 전투부대와 특수전부대로 구분하였습니다만 실제로 이 두 부대로 편성 구분된 적은 없었습니다. 또한 언제든지 정규군으로 편입될 수 있게 하였고 호국군의 신분은 지금의 예비군과 같이 예비역으로 편입되어 있다가 각자 거주지에서 거주지 소속 연대로 집결하는 방식으로 훈련 또한 거주지 연대에서 받는 것으로 되어있습니다. 재미 있는 점은 장교들의 보직 제한 연령을 명시했는데 대대장급 이상은 60세 중대장급은 50세 그리고 소대장급은 40세까지로 제한하는 규정이 있었습니다.(지금 대대장급은 대략 30대 중반 중대장급 20대 후반 소대장급이 20대 초중반이라는 걸 생각하면 스펙터클한 겁니다) 그밖에 호국군 사관학교를 따로 두어서 장교 후보생들은 현역 부대에서 6주간 훈련후 여기서 다시 훈련과 교육을 받는 체계로 이루어졌습니다.

 

 

호국군 조직과 편성

 

 호국군은 시,군,면단위로 중대 대대를 편성하고 그 조직을 현역에 준하는 편제 즉 3,4,4,4편제(연대 예하 3개 대대, 대대 예하 4개 중대, 중대 예하 4개 소대, 소대 예하 4개 분대)로 편성되었습니다. 사병들은 [병역임시조치령]에 따라 본인의 지원에 의해서 신검을 받은 후 합격자 중에서 본인의 희망에 따라 현역으로 갈 것이냐 호국군(땡보!)로 갈 것이냐를 결정 했습니다. 하지만 예비군이라고 하더라도 연대와 대대 내에 인사 정보 작전 의무 수송 군수 심지어는 특별 참모까지 있을 정도로 사실상 현역에 준하는 편제였고 연대장과 대대장은 주로 군사 경력자들로 임명되었습니다.

 

 호국군의 창설과 더불어서 1948년 11월 20일에 육군본부에는 호국군 군무실(초대 실장 신응균 중령)이 설치되고 호국군 창설과 관련된 계획과 업무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에 이 군무실은 호군국으로 확대 개편됩니다. 이와 동시에 현역 10개 연대 예하에 호국군 고무부를 두어 예비군 편성에 착수 하였는데 이를 통해서 1948년 말까지 호국군의 편성은 거의 완료가 되고 이때 까지 제 101, 제102, 제103, 제106 여단이 편성됩니다 이후에 1949년 1월 10일에 추가적으로 6개 여단(105, 107, 108, 110, 111, 113)이 증설되면서 총 10개의 연대가 창설됩니다. 이들 여단장직에는 육사 8기 특별 제1차과(한마디로 당시 장교 보충을 위해 단기적으로 군사 교육을 시키고 배출된 인원들)를 수료한 광복군 및 일본 육사출신 장교들이 골고루 임명됩니다. 

 

 부대 편성이 완료되자 육본은 호국군무실을 호군국으로 승격시키고 49년 3월4일에는 호국군간부훈련소를 이태원에 설치합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호군국을 없애버리고 육군총참모총장 직속에 호국군 사령부를 설치해버립니다. 이와 동시에 호국군간부훈련소는 호국군사관학교로 개칭되는데 이때가 7월 16일이었습니다. 호국군사관학교는 총 4개기에 걸쳐서 1080명의 호국군 장교를 배출합니다.

 

 

호국군의 해체

 

 그러나 호국군사령부는 49년 8월 6일 병력법의 공표와 함께 8월 31일 해체되어버립니다. 호국군 사관학교도 동월 16일날 문을 닫아버립니다. 호국군이 해체되기 시작하면서 각 연대본부 근무자들의 일부는 49년 9월 1일 창설되기 시작한 각도의 병사구사령부 기간요원으로 편입되고, 10월 17일까지 총 290명이 현역으로 전환 편입됩니다. 또 호국군 장교들은 1080명중 640명이 현역으로 편입됩니다. 참고로 호국군 출신으로 장군이 된 사람은 총 11명입니다. 참 시작에 비해 허무한 결말입니다.

 

 

존재의 잔상

 

 이처럼 호국군은 병역법의 시행과 함께 사라지고 후에 나오는 청년방위대와는 아무런 실질적인 연관성도 없는 그냥 유령부대로 남게 됩니다. 덕분에 청년방위대가 최초의 예비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죠. 아무튼 이런 호국군이라도 후에 생기는 청년방위대의 편제와 조직을 편성하는데 상당한 역활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단적으로 호국군과 같은 행정조직망을 그대로 답습하고 청년방위대 또한 간부 양성기관을 설치 합니다. 이후에 이런 형태는 국민방위군에도 영향을 주고 궁극적으로 지금 있는 호국 예비군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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