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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세계대전2

미주 한인의 2차세계대전 참전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재미 한인 사회는 2세 청년들이 성장함에 따라 새로운 인재를 확보하는 한편, 2세들의 정체성 문제를 겪게 되었다. 첫 이민 이후 30년이 지나는 동안 미국에서 성장하고 교육받은 한인 젊은이들이 이민 사회의 주역으로 떠오르면서 이민 1세와는 다른 자기 정체성(self-identity)을 요구하고 있었던 것이다. 초기 이민 세대가 노령화되어 가면서 미국에서 교육받거나 태어난 이른바 1.5세 및 2세들은 한인 사회에 변화를 요구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1929년 말부터 1933년 초까지 하와이 한인 사회 내부에 상당한 풍파가 일어나게 되었는데, 그것이 1931년 초에 발생한 이른바 ‘교민 총단관 점령 사건’이었다.註 070 1930년 이후 한인 2세들이 지닌 자기 정체성은 ‘한국계 미국.. 2020. 7. 20.
1940년대 초 미군 징집 상황에 대한 소고 1939년 2차대전이 발발할 당시 미군은 겨우 17만 4천명의 병력만을 보유하고 있던 군대였다. 때문에 어떤식으로든 징병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었다. FDR은 국민들에게 징병의 필요성을 계속 역설했으며 1940년 여름 동안 의회는 징병 법안을 손질하였다. 결국 1940년 9월 의회는 선별적 훈련 및 복무법을 통과시켰고 이 법에 의해서 21~35세 남성 약 1650만명이 징병을 위해 등록을 해야 했다.1 결국 1940년 10월 16일 미국 전역에는 병역 등록소가 설치되었으며 등록은 예상과는 다르게 조용하게 끝났다.2 이로써 미군은 징병제 군대로의 첫걸음을 나가게 되었다. 수십만명에 달하는 병력들을 훈련시키기 위해 미 육군은 미 전역에 46개의 훈련소를 새로 증설할 계획을 세운다. 하지만 연방 예산이 194.. 2020. 7.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