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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파키스탄과 카슈미르와 탈레반

by 바스통 2021. 8.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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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은 예나 지금이나 탈레반의 든든한 후원자이다. 파키스탄 정보부인 ISI를 중심으로 군부와 민간 정부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90년대 경제 위기와 핵실험에 대한 국제 제재 와중에도 탈레반을 적극적으로 지원했던 세력들이었다. 그리고 파키스탄은 탈레반이 97년 아프가니스탄의 정권을 잡았을 때 파키스탄이 가지도 있던 두랜드 선을 중심으로한 오래 된 안보 딜레마를 드디어 제거했다고 생각하였다.

 

  파키스탄은 영국이 물러난 이후 태생적으로 두 가지의 안보 문제를 떠안게 되었다. 하나는 인도와 파키스탄 간의 유명한 문제인 카슈미르 분쟁이고 다른 하나는 서북지역의 듀랜드 선을 중심으로 하는 아프간과의 발루치스탄 문제다. 특히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은 이 발루치스탄 문제에 대해서 1950년대와 1960년대 파키스탄과 국경에서 충돌할 정도로 민감하게 반응하였다. 당시 파키스탄은 듀랜드 선을 계승할 것을 주장하였으나, 아프가니스탄은 듀랜드 선을 부정하고 파키스탄 파슈툰족 거주 지역이 독립을 하거나 파키스탄 또는 아프가니스탄에 편입되도록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급진적인 경우 당시 아프간 정부는 파키스탄 파슈튠족이 ‘대파슈투니스탄’으로 파키스탄과 분리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기 때문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은 1955년과 1962년 두 차레나 국교를 단절하기도 하였다. 이런 안보 불안에 대해 파키스탄은 지하드를 이용해 아프간에 친파키스탄 파슈툰 무자헤딘 정부를 수립하면 이 같은 주장을 영원히 봉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이런 생각은 탈레반 지원에 정치적 기반이 되었다.

 

 또한 이런 파키스탄의 생각은 카슈미르 분쟁에서도 중요한 이점을 주는 것으로 생각되어졌다. 파키스탄의 내륙 지형상 국토가 길고, 면적과 심도, 후배지 같은 것이 없기 때문에  인도와 장기전을 수행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무자헤딘'을 이용해 '전략적 종심'을 제공하여 이들이 싸우게 한다면 파키스탄의 입장에서는 인도를 장기적으로 괴롭힐 수 있었다. 이외에 아프가니스탄이 친 파키스탄적이면 인도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카슈미르 전사들에게 기지를 제공하여 훈련을 시키고, 자금을 주고, 무장할 수 있다는 좀 더 당찬 고려도 있었다.

 

 이에 따라 '전략적 종심'은 파키스탄의 대아프가니스탄정책에서 주요 목표가 되었다. 1960년대까지는 단순한 생각에 그쳤지만, 70년대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하고 파키스탄은 아프가니스탄을 지원하려는 서방의 정보기관과 군사 원조의 전진기지가 되면서 무자헤딘을 다루는 방식을 본격적으로 습득하게 된다. 그리고 1992년 카슈미르에서 파키스탄 게릴라 공격이 이어지면서 미국이 파키스탄을 테러 지원 국가로 지정하려 하자, 파키스탄은 카슈미르 그룹 대부분을 아프가니스탄으로 옮기고 당시 그룹의 수장이던 잘랄라바드 슈라에 자금을 제공해서 그들을 장악하는 방식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다. 그리고 이 그룹은 '탈레반'이라고 불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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