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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세계 닭요리-동안계, 동안자계

by 바스통 2020.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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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호남성의 요리는 수백까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상당히 다양한 요리 가지 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만큼 중국 답게 요리 문화가 발달된 곳 중 한 곳입니다. 물론 북경, 상해, 광동, 사천이라는 빅4에는 못 들어가지만 말이죠. 수백가지가 있는 호남성 요리 중에서도 으뜸을 뽑으라고 하면 그건 동안계(東安鷄) 혹은 동안자계(東安子鷄)일 것입니다.(사실 동안계와 동안자계가 같은 요리인지 확신이 없었습니다만 자료들을 찾아보니 같은 요리 였습니다) 닭고기에 뼈를 발라서 식초와 고추, 생강등을 넣고 볶은 이 닭요리는 육질이 부드럽고 신맛, 매운맛, 얼얼한 맛이 잘 조화되어있다고 합니다. 현재 동안계는 식당에서 뿐만 아니라 진공포장되어서 일반 가계에서도 팔리는 호남성의 특산물로 자리 잡았습니다. 이 동안계의 유래에 대해서는 두가지 예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호남성 동안현에 식당을 운영하는 세 과부가 있었는데 가게는 썩 잘되는 편은 아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가게 문 답을 시간에 손님들이 갑자기 들이닥쳤는데 아무 요리나 빨리 내놓으라고 난리를 피우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문제는 가게 문닫을 시간이었던 지라 식재료가 다 떨어져 버렸다는 것이었죠. 그러던 중 한 과부가 뒷마당에서 기르고 있던 암탉을 잡아 살을 발라서 기름에 볶아 아무렇게나 만든 닭요리를 만들어 내놨다고 합니다. 그런데 손님들이 이 맛에 완전히 매료되었고 이 과부들은 그 이후에 이 요리를 식당의 메인요리로 키우면서 유명해졌다고 합니다.

 

 다른 유래는 290년 서진 시대때 동안에 현령이 부임한 것에 대한 축하연에서 닭요리가 올라 왔는데 그 맛이 상당히 좋았다고 합니다. 그러자 현령은 주방장을 불러서 어째서 이렇게 닭요리에 신맛이 많이 나는지 물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주방장은 자신이 실수를 해서 식초를 제대로 조절하지 못해 너무 많이 넣었다고 엎드려서 용서해달라고 빌었다고 합니다. 그러자 현령은 주방장을 일으켜 세우고 그 맛을 칭찬하였고 그 이후에 이 요리의 조리법이 민간에 널리 전파되어 동안의 대표 요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참고로 당시 서진시대에는 진초계(陳醋鷄)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두 유래다. 동안이라는 같은 지방에서 실수로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이 공통점이지만 위에 전자는 민간에서 구전되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동안계라는 이름도 의외로 근래에 들어서 만들어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청말 태평천국의 난을 진압했던 석보전이 은퇴하여 호남에서 살때, 어느날 증국번과 좌종당이 석보전을 찾아왔답니다. 그래서 손님과의 식탁에 이 닭요리가 올라왔는데 좌종당(이 분도 치킨매니아죠)이 석보전에게 이 닭요리의 이름을 물었습니다. 그러자 석보전이 우물쭈물하여 대답을 못하자 답답했던 증국번이 관보의 집에서 먹은 닭요리라는 뜻으로 관보계(官保鷄)로 지어버립니다. 사실 이건 장난끼 있는 말장난이긴 하지만 그렇게 한동안 관보계로 불렸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중화민국 시대에 당생지가 무슨 이유에서 인지 사람들에게 동안계라고 소계하면서 현재의 동안계 혹은 동안자계로 이름이 굳어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1972년 모택동과 닉슨과의 만찬장 상에 동안계가 올라오면서 서방에도 소개 되어 유명세를 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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