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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다서고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산 자와 죽은 자

by 바스통 2020. 7.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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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작가 : 프리모 레비

출판 : 돌베개

발매 : 2014.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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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수용소의 피해자가 40년이 흘러 관찰자의 입장에서 나치즘과 인간의 위기를 치밀하게 분석한 문제작 아우슈비츠 생존 작가 프리모 레비의 생애 마지막 작품 증언문학의 반열에 오른 이것이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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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흔히 알려진 홀로코스트 저서이다. 프리모 레비는 그의 처녀작이자 대표작 중 하나인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아우슈비츠의 경험을 다뤘고 그 다음작인 <휴전>에서 대전과 해방 그리고 집으로 오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가 죽기 얼마전에 발표한 <가라 앉은 자와 구조된 자>는 나이가 먹고 다시 한번 그가 라거의 경험을 사유하고 성찰로써 집대성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쥐>에서 수용소에 갖혔던 인간의 외형적 모습들 즉 맞고 부셔지고 엎어지면서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외견을 보여줬다면 이 <가라앉은 자와 구조된 자> 자신의 눈으로써 보는 수용소의 사회에 대해서 보여준다. 정확히는 그들 자신을 파괴했던 것이 누구였고 어떤 사회와 어떤 환경에 처했는지에 대한 답을 주는 걸작이라고 칭하고 싶다. 

 흔히들 우리가 상상하는 유대인 수용소 혹은 소위 라거라는 무대에서 악인은 독일인이고 선인은 유대인과 피수용자들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리고 그 양분은 수용소 사회를 이해하는 모든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이런 이분법적인 시각은 복잡한 사회를 이해하는데 가장 편하고도 합리적인 자기 방어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는 완전한 선인으로 누군가는 완전한 악인으로 규정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관계를 가지는데 있어서 그 사람이 완전한 진실과 완전한 신뢰를 한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 적과 아군을 어떻게 구별할 것인가? 우리가 속해 있는 사회와 집단이 과연 우리 개인에게 완전한 동맹으로 있어줄 수 있는가? 이런 물음들은 사회라고 불리는 이 곳은 물론 라거라고 부르는 그 곳에서도 끊임 없이 묻는 질문이다. 단지 라거는 상황이 그냥 좀더 극단적일 뿐이고 사람들이 그냥 좀더 빨리 지워지는 것이 다를뿐이다.

 인간은 '선량한 개인이면서 사악한 조직인이다'라는 말이 있다. 라거에서 이 말에 세상에서 가장 잘 부합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좀 더 효과적인 수단으로 압제하려는 압제자와 아주 약간이지만 삶을 연장하려고 하는 피수용자 간의 야합은 극단적인 상황과 만나 기묘한 동거를 보여준다. 압제자에게 빌붙어 약간의 특권을 받기 위해서 발버둥치고 여기에 동조해 다른 형태의 압제자로 자연스럽게 진화한다. 이 과정에서 죄는 희석되고 동조되고 없어진다. 이것은 라거가 보여주는 가장 기본적이고 가장 최소 단위의 인간 법칙이다. 이런 적자를 이해하지 못하면 라거라는 공간의 문화와 사회를 알 수 없다고 레비는 말한다.

 소위 구조된 사람들 혹은 생존자들에 대한 우리는 그들의 인생에 대해서 최고의 사람들, 선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 중에 선한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선함에는 권력을 남용하고 수완이나 행운 덕분에 혹은 압제자에게 동조해 폭력을 휘두르고 무감각하게 옆사람의 시체를 옮기거나 자기 자신을 위해서 이기적인 면모들은 전혀 들어있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그것이 라거였고 사회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어한다. 우리가 믿는 도덕적 가치 즉 누군가를 돕고 빵을 나눠주고 친위대가 다른 사람을 보지 못하게 가려주고 친구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무언가를 희생하는 사람들은 결국 바닥으로 떨어져 거대한 수용소 한 구덩이에 파묻힌다는 것을 알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동조자들과 이기주의자들도 같이 파묻혔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많은 생존자들이 동조했다는 것을 부인하긴 쉽지 않다. 심지어는 쥐의 블라덱도 함석장이로 그리고 구두장이로 친위대에 일조했다. 그것은 부도덕적인 동시에 이중적이게도 생존을 위한 최선이다. 프레모 레비는 이 이중적인 지역을 '회색지대'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그것이 사회이다. 단지 개방적이고 좀 더 넓어졌을 뿐이다.

 이 책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게 보는 읽은 장 중 하나는 아우슈비츠에 빠진 지식인들에 대한 얘기다. 물론 여기에 지식인들이란 고차원적인 전문 기술을 갖춘 기술인 뿐 아니라 교양을 갖춘 일반적인 사람들을 말한다. 모든 사람이 그렇지만 특히나 그들은 아우슈비츠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고통에 훨씬 민감하였고 굴욕감과 박탈감 그리고 존엄성을 잃어버린 것에 굉장한 괴로움을 느꼈다. 거기다가 그들은 라거의 군대 패러디 희극에도 전혀 맞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그들은 죽음에서 조차 자신들이 보았던 문화와 비문화의 경계가 사라졌음을 고통스럽게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쉽게도 자신의 실존적 가치에 대해서 공허감을 가지게 되었고 삶의 의미를 빠르게 상실해갔다. 어쩌면 이 책이 말하는 끝 모를 깊은 절망감 가장 끝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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