앨버트의 누운 성모의 전설
프랑스 앨버트는 파리에서 북쪽으로 100마일 떨어진 피카르디 지방의 북부에 위치한 인구 1만이 조금 넘는 소도시입니다. B.C.54년 로마군이 이 지방에 주둔한 이래로 마을로 형성된 앨버트는 역사적으로 별볼이 없는 그냥 그런 도시로 남아있을 수도 있었습니다. 단 옆에 솜이라는 지역이 있었다는 것만 빼면 말이죠.
지금으로 부터 딱 100년 전의 앨버트는 인구 7000명의 소도시였습니다. 하지만 1차대전이 시작되고 '바다로 가는 레이스'가 끝나면서 솜의 바로 옆에 붙은 앨버트의 위치는 이곳에 주둔했던 영국군에게 매우 중요한 지역으로 바뀌게 됩니다. 솜을 통해 최전선으로 가던 영국군에게 앨버트는 참모부부터 야전병원, P.X등이 들어서게 됩니다. 이런 앨버트를 독일군이 그냥 넘어갈리 '당연히' 없고 영국군이 이 지역에 전개하고 있는 전쟁기간 동안 내내 이 지역을 포격합니다.그로 인해서 전쟁이 끝난 1919년이 되면 앨버트에 인구는 120명으로 급감하게 되죠.
그렇게 전쟁기간 중에 독일군에게 난타 당한 앨버트에는 예전부터 바실리카가 하나 있었습니다. 바로 Brebieres의 노트르담 바실리카였는데 이 바실리카 꼭데기에는 아기 예수를 든 금색 마리아 상이 세워져 있었습니다. 노트르담이라는 이름 답게 이 도상은 골든 버진(Golden Virgin)으로 불리어졌습니다. 그러나 1915년 1월 15일 독일군의 포격이 강타하면서 이 황금색 마리아상은 '서있는' 동상에서 '누운' 동상으로 바뀌게 됩니다.
그 모습이 마치 떨어지는 아기를 잡으려는 어머니의 모습 같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마치 다이빙하는 수영 선수의 모습 같았기 때문에 이를 'Leaning Virgin' 혹은 호주인들은 1912년 올림픽 수영 금메달 리스트의 이름을 따서 'Fanny Durak'라고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름이야 어찌 불리든 그 인상 깊은 모습과 종교적 상징성 때문에 이에 관한 몇가지 소문이 나돌았는데 영국군인과 프랑스군인들은 전쟁이 끝나는 날에 마리아상이 떨어질거라고 수군거렸고 독일군인들은 동상을 떨어뜨리는 쪽이 전쟁에서 질거라고 수군거렸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1916년 7월에 솜 공격이 시작되면서 솜에서 불과 3마일 밖에 떨어지지 않은 앨버트를 거쳐 수많은 영국군인들이 '돌아오지 못하는 진군'을 하게되면서 앨버트의 누운 성모는 하나의 아이콘으로써 영국군인들과 프랑스군인들에게 떠오르게 됩니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쇠와 불로 가득한 용광로로 가는 기묘한 행군 속에서 멀리서 혹은 가까이서 본 누운 마리아 상은 병사들 개개인에게 강한 인상을 남기기 충분하였고 이는 친숙한 이미지가 되었습니다. 때문에 전후 여러 시들과 자서전등에 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위태롭게 누워있던 마리아에게도 결국 떨어지는 순간이 찾아오게 됩니다. 1918년 3월 독일군이 마지막 대공세를 시작하자 전선은 무너지기 시작하고 후퇴하던 영국군 지휘부는 바실리카의 첨탑이 독일군의 관측소로 사용될 것을 우려하여 이를 파괴하는 명령을 수행합니다. 마리아 상을 떨어뜨리는 쪽이 전쟁에서 질 것이라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말이죠. 결국 영국군이 앨버트로 다시 돌아온 것은 그로 부터 5개월 후였고 다시 3개월 후 두 소문 다 틀렸다는 것만을 보여주며 1차대전은 막을 내리게 됩니다.
전후 마을이 복구되면서 바실리카와 골든 버진도 재건됩니다. 정확하게는 영국군에의해 골든 버진이 완전히 파괴되어 실물을 대신해 레플리카가 솜 평야를 바라보는 상태로 다시 세워지게 됩니다.
단지 우연의 일치로 피사의 탑과 같은 상태가 되어버린 동상이지만 얼마나 많은 영국인과 프랑스인, 독일인들이 빨리 저 동상이 떨어지고 전쟁이 끝나기를 기도했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죽음의 땅에서 그런 수 많은 바램들이 모여 'Leaning Virgin'의 전설을 만들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