쥐-살아남았지만 죽은 자
작가 : 아트 슈피겔만
출판 : 아름드리미디어
발매 : 2014.06.15.
쥐
1992년 만화책으로는 유일하게 퓰리처상을 수상한 『쥐』. 아트 슈피겔만이 14년간 그려 완성한 이 작품은 만화에 대한 인식 전체를 바꿀만큼 전 세계의 수많은 이들에게 대단한 영향을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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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자는 2차대전 게토에서 살아남았던 아버지의 경험을 아들의 입장에서 담담하게 그린 수작이다. 1973년 작품이니 굉장히 오래되었고 한국에서도 구판과 신판이 두번 출간된 명작이다. 본인의 만화에 대한 편견을 가차없이 깨부셔버린 작품이기도 하면서 어렵게 구판을 구했더니 몇달만에 신판 양장본을 발매해 빅엿을 선사한 작품이기도 하다. 덤으로 야자 시간에 책본다고 뒷통수 거하게 까이게 했던 책이다.
쥐와 고양이라는 우화 형태와 대화형식은 비극을 더욱 담담하게 그리는 장치로써 역활을 하는데 이를 보고 있으면 덕분에 비현실성과 비극성이 더욱 강화되는 독특한 느낌을 준다. 더군다나 만화라는 시각적 요소는 나치 수용소에 대한 깊은 고찰 보다는 일어나는 폭력성 그 자체를 그대로 보여주는 모습들로 색다른 느낌을 준다. 마치 그 행위의 의미도 모르고 받는 그 사람들과 같은 동조성 말이다.
이런 시각적 표현들은 글과는 전혀 다른 면을 보여준다. 홀로코스트 그 자체뿐 아니라 그 속에 있던 희생자들이 어떻게 상처입었고 그 상처로 어떻게 미쳐갔으며 그걸로 어떻게 주변을 미치게 만들었는지 말이다. 이 책은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이면서 "홀로코스트에 대한 책이 아니라"는 어디서 봤던 서평은 정말 이 책의 성격을 한 줄로 보여준다. 어지간한 사람은 절대로 범접 할 수 없는 이야기 구성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잘 짜여져있고 가감 없이 보여준다.
살아남은 사람은 인간이라는 종족의 정말 밑바닥까지 보게 되기 마련이다. 이미 그 곳에 첫 발을 들여놓으면서 인간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고 사람들에게 밀쳐지면서 일반적인 인간성에 대한 신의를 영원히 잃어버리게 된다. 끊임없이 의심하고 끊임 없이 두려워 하고 끊임 없이 시험 받고 자유의지를 잃고 자신을 잃고 그저 명령하는대로 움직이는 삶의 연속이다. 외부인들은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내부인들에겐 그저 생사를 가르는 평범하고 익숙한 무엇일뿐이다. 그냥 하는 것일뿐 어떠한 합당한 이유는 없다. 이미 그 사람의 정신은 파헤쳐질대로 파헤쳐져서 누더기 상태일뿐이다. 그것에 맞서 무언가를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고귀함을 들어내는 동시에 그 사람을 철저하게 파멸시킨다는 것을 모두가 안다. 자신의 의지가 아닌 그저 타인의 명령과 자신과 동급인듯한 사람들을 상대로한 말장난, 그리고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에 대한 발길질이 그의 전부이고 자기 육체의 주인이 된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그 모든 것이 끝난 이후에 그 사람의 마음은 온전하게 회복될까? 단언컨데 전혀 아니다. 그것을 자각하든 안하든 그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 정말 아무 것도 없다. 무엇으로도 메꿀 수 없고 채우기도 힘들다. 그것은 그 사람이 평생동안 짊어져야 할 업보이다. 사람마다 그것에서 도망쳐보기도 하고, 삶의 의미를 부여해보기도 하고, 강박적으로 무언가를 해보기도 하고, 지식을 쌓거나 죄책감에 휩싸여보지만 끓임 없이 분출하는 회의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다만 비슷한 상황이 오면 주저하지 않고 수백번도 더한 일을 반복 할뿐이다. 그러다 결국 그 구덩이와 다시 마주하게 된다. 아무 것도 자기에 대해 그릴 것도 없고 말할 것도 없다. 그저 슬플뿐이다. 슬플뿐이다.
본인은 홀로코스트 생존자이면서 아버지인 블라덱도 그 아들인 아티의 편도 들 수 없다. 왜냐하면 그 둘의 입장 둘다 이해하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에게 선과 악을 단정짓는 것은 이미 인간의 가치 판단을 넘어서는 일이다. 적어도 본인은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