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제국쇠망사-로마는 망해도 천년을 간다
작가 : 에드워드 기번
출판 : 동서문화사
발매 : 2007.12.25.
로마제국쇠망사
『로마제국쇠망사』는 2세기부터 1453년 콘스탄티노폴리스가 함락되기까지의 약 1,300년간의 로마제국 역사를 에드워드 기번이 12년이라는 저작기간에 걸쳐 완성시킨 최초의 역사서이다. 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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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생각난게 이것뿐인지라 결국 계몽주의 역사책까지 쓰게 됐다. 로마제국 쇠망사는 흔히들 '로마'라는 이름때문에 SPQR의 그 로마나 서로마정도의 역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장장 1300년대의 진짜 로마인들이 스스로를 로마라고 부르는 세월을 전부 써붙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그렇기때문에 두께가 만만치 않다. 민음사에서 완독한 것만 6권이나 되고 그 한권 한권이 흉기에 가까운 분량을 가지고 있다. 책보다가 자더라도 책베고 편하게 자라는 저자의 배려가 아닌가 싶다. 아니면 잉여력 넘치는 덕후의 배려던가.
수많은 고고학적 역사적 반례들과 현대적인 학문 성과로 공격 받으면서도 이 책이 장장 230년동안에 이르는 시간 동안 역사서 이외에 문학서로도 잡힐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사실 근대의 계몽주의 역사학이 대두되기 이전에 사람들에게 역사란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목적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란 언제나 제왕학의 일부였었고 귀족들의 교양 가십에 지나지 않았던 시절도 있었다. 때문에 어떤 교훈과 교육을 위해 억지로 사실 자체를 곡해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그 자료의 해석과 시각이 일방적으로 강요되기도 하였다는 것은 놀랍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저자의 계몽주의적 서술은 당시로써는 단순히 역사를 서술한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좀 더 과학적이고 사실에 입각한 정확하고 균형있는 저술과 엄밀성은 당시로써는 아무도 가보지 않은(사실 타키투스 이래로 버려져서 폐허가 되어버린) 길이었다.
생각해본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근대 이후에 생성 된 민족국가와 과거 우리가 제국이라고 불렀던 구 거대 국가는 엄연히 그 팽창 방향에 차이가 있다. 이를테면 제국은 횡적으로 팽창한다면 민족국가는 종적으로 팽창한다. 모든 국가는 그가 가진 수명이 있고 그 주기에 따라 흥망성쇠를 반복한다지만, 이런 공간적 차이는 태생부터 제국과 민족 국가가 서로 다른 길을 걸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멸망의 순간도 그렇다. 끊임없는 반항과 저항으로 점칠되는 민족국가 끝에 비해서 구 제국의 멸망은 언제나 인간에게 장엄한 영감과 환상을 불러일으키지만 실상은 마치 로마의 멸망처럼 너무나 허무하고 카르타고의 멸망처럼 장렬하지도 못했다. 하지만 이 태생적 차이에도 한가지 동일하게 놓여있는 것은 결국 '인간의 불완전성'이라는 점을 기번은 보여준다.
'인간의 불완전성'은 이 책 모든 곳에 깊게 베여있다. 사실 책을 열어보면 좋은 소리는 별로 없다. 따지고 본다면 대부분의 장은 인간의 악덕으로 점철되어있다. 오죽했으면 "모든 열정과 원칙은 야망이라는 최고의 명령에 자리를 내준다"고 썼을까. 어디 그뿐인가 무모한 권력욕과 성욕, 뒤틀린 심성과 모자라는 지성과 더불어서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약탈, 골육 상잔과 술수, 제위 찬탈과 음모로 뒤범벅되어있다. 하지만 이런 불완전성과 악덕의 범벅들을 뚫고서도 인간이 쌓아올린 것 종국에는 로마라는 거대한 영광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기번이 적어놓은 영광은 온전하게 보존된 유적이나 화려하게 복원된 유물보다 우리의 감흥과 영감을 더욱 자극하고 충동하는 ‘폐허’인지도 모른다. 그 폐허가 품고있는 것이 안타깝고 쓸쓸한 몰락과 쇠망의 정취라 할지라도 눈 밝은 이들은 이끼 낀 초석들, 부러져 뒹구는 신전 기둥들 사이의 그 쓸쓸한 폐허 속에서도 지난날의 찬란했던 번영과 영광의 흔적을 찾아 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고 보면 후대에게 맥수지탄이란 어쩌면 나름의 수혜인지도 모를 일이다.